참 다행입니다.

아침 마당의 하늘은 칙칙하고, 공기는 달달합니다.
비 인지, 흙 인지, 그냥 바람 냄새인지
쓰읍 쓰읍 들이마시면
마음은 아득이 몽곤해집니다.

초등학교, 그 때 말로는 국민학교는 오후 세시면 파하곤 했습니다.
어김없이 친구들과 손이 꺼매지도록 놀다보면
파랗던 하늘은 귤색으로 변해가고
깜짝 놀라 집으로 뛰어갑니다.

된장찌개 냄새, 고등어 냄새, 꾸리한 간장 달이는 냄새까지
우리동네 골목은 매일매일 세상 맛있는 반찬단지가 됩니다.

할머니 방에는 툽툽한 장롱냄새
또닥또닥 부엌에선 꼬소한 두부지짐 냄새
꼬물이 막내 볼딱지에선 삭은 우유 냄새가 납니다.

그 시절 사진들은 노랗게 바래졌는데
그 시절 향기는 바래지도 않습니다.
너무 또렷해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참 다행인 것이
그래도 비 냄새는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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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yuan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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